총장의 메시지

    한 번쯤은 이런 경험 있었을 겁니다. 늦은 밤 넷플릭스 사이트를 훑으면서 제목을 검색하고 예고편도 몇 개 보고, 후기까지 보지만 영화 한 편 딱 고르는 게 쉽지 않습니다. 순식간에 30분이 흘렀어도 여전히 스크롤만 내립니다. 뭔가를 보기엔 너무 피곤해져서 이만 잠자리에 듭니다. 이게 지금 세대를 정의하는 특징일 겁니다. 꿈 많은 청년일수록 어느 한 가지 정체성, 장소, 공동체에 스스로 묶이는 걸 원치 않습니다. 사람만 그런 게 아니지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도 역시 끊임없이 변합니다. 우리가 하나의 직업이나 역할, 생각이나 신념, 집단에 매달려 오랫동안 같은 형태에 머무르기 힘든 것처럼 사회도 우리를 진득하게 품어주지 않는 겁니다. 모든 걸 끊임없이 탐색만 하는 게 인생을 더 불확실하게 만듭니다.


    대학의 문에 들어선 것.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온 순간은 마치 수많은 방이 딸린 기나긴 복도에 들어선 것과 같습니다. 지난 12년간의 온실 속에서 걸어 나와 여기저기 탐색할 방이 끝없이 널려있는 세계로 들어서는 셈이지요. 영화 한 편을 고를 때처럼 선택지가 많은 데서 오는 이점이 어떤지는 나도 잘 압니다. 진짜로 자아에 잘 맞는 ‘방’을 찾았을 때의 기쁨도 겪어봤습니다. 미래의 진로를 정할 때조차 지금의 결심을 언제든지 멈출 수 있고, 중간에 그 방을 나오더라도 복도가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든든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열린 문이 너무 많아서 생기는 단점이 나타납니다. 학생 여러분은 잠긴 문 뒤에서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여 사는 게 단조롭게 보이겠지만, 그렇다고 복도에 마냥 머무를 수도 없는 일입니다.


    어느 하나에 전념하다 보면 새로운 경험은 놓치더라도 모든 걸 쏟아부었을 때만 돌아오는 엄청난 성취감이 있습니다. 사실, 인생의 성패는 집중력으로 결정됩니다. 깊이는 새로움을 이깁니다. 1960년대 브로드웨이엔 코미디언들이 자주 들렀던 치즈케이크 가게 린디즈(Lindy’s)가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살아남은 생각이나 관습일수록 미래에도 계속 유지될 확률이 높은 현상을 그래서 ‘린디효과’라고 합니다. 이번 학기 ‘총장과의 정오 데이트’에서 함께 관람했던 연극 ‘오백에 삼십’, ‘운빨 로맨스’도 수년째 성업 중이니 그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 신작들보단 평균적으로 오래 공연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지속성은 최소한 삶의 깊이를 측정하는 기준도 됩니다. 수년간 읽은 트윗들은 머릿속에서 눈 녹듯 사라지지만, 캠핑에 빠져 심산유곡에서 홀로 지낸 그해 여름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휙휙 넘겨봤던 영상들은 기억이 희미하지만, 두어 시간 몰입했던 어느 다큐멘터리도 여전히 머릿속을 맴돕니다. 전념하기의 영웅들은 올바른 균형을 유지하는 데서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자기에게 맞지 않는 방에 갇혀있거나 한없이 복도를 서성대며 이 방 저 방 기웃대는 대신, 그들은 스스로 방을 선택해서 거기에 정착한 결과지요. 뉴욕타임즈의 베스트셀러 작가 피트 데이비스는 저서 <전념(Dedicated, 2022>에서 이게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 어보브반도체(주)의 CEO가 다녀갔습니다. 알고 보니 반도체업계의 틈새시장에서 세계 4위로 우뚝 선 이 기업은 바로 ‘히든 챔피언’이었습니다. 우리 대학 통신공학과 82학번 최원 대표가 설립한 상장사인 걸 몰랐습니다. 리크루트를 위해 모교를 찾은 최 대표를 만나면서 상위 1%의 성공 비결을 잠깐 생각했습니다. 재학생 여러분, 복도에 머무르는 시간은 짧을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전념하는 일이 가능하고,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집필했던 칼럼이 있어 여기에 링크합니다.


[허희영의 서비스경영ㆍ29] 상위 1%의 성공 비결은 1만시간, 10년의 법칙 - 매일산업뉴스 (ims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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