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는 관계 지능(Relational Intelligence)이 인지 지능 IQ보다 더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지난 3월 발표된 스탠포드대학 연구진의 예측입니다. 기업에선 이미 AI 기술보다 ‘인간 중심 기술(human-centered skills)’을 갖춘 인재를 30% 더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혔습니다. 알고 보면, 우리 삶의 모든 일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시작됩니다, 세상사의 모든 성공과 실패도 예나 지금이나 사람과의 관계로 결정됩니다. 인간에겐 사회를 형성해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 관계를 만들어 어울리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회적 동물본능이 작동합니다. SNS가 보편화된 디지털 세상에서 비대면의 온라인 소통으로 다양한 접촉이 가능해졌지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 이 세상에는 사람 때문에 행복해지는 사람보다 사람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지금 AI가 인간의 생각과 일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더 중요해지는 게 있습니다. 바로 사람 간의 ‘관계’와 ‘소통’입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할수록 가장 인간적인 요소가 최고의 전략자산이 되는 시대에 AI가 빠르게 진화할수록 진정한 경쟁력은 기술이 아닌 사람 간의 관계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역설적인 얘기를 신간 <관계의 역설(이성동‧김승회, 2025)>에서 일부 발췌해 AI 시대의 새로운 인간관계론으로 잠깐 소개합니다.
인간은 원시시대부터 관계를 갈망하는 존재였습니다. 동굴벽화에 그들의 삶과 경험을 새기며 종족과 소통했던 그 본능이 오늘날엔 디지털망으로 더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소통의 수단이 발달할수록 진정한 관계의 깊이는 낮아지고 있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에서 그 어느 별도 손에 닿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무수한 연결 속에서도 진정한 교감의 온기가 그립습니다. 지금 우리는 손안의 디바이스로 세계 어디든 연결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그 어느 때보다도 고독을 느낍니다. 마치 빽빽한 숲속에서 길 잃은 것처럼 수많은 연결 속에서도 진정한 소통에 목마른 역설적 상황에 놓이곤 합니다. 챗봇과 대화하며 하루를 보내고, AI 비서에게 일정을 맡기며, 때로는 AI와 더 편안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늘면서 마치 바다 한가운데서 물을 찾아 헤매는 것처럼 연결의 바다에서 진정한 관계의 갈증을 느끼고 있는 겁니다. 그들은 디지털 세상의 거대한 파도 위에 떠 있는 작은 배처럼 수많은 정보와 연결의 조류에 휩쓸리며 진정한 관계라는 등대를 찾아 헤매는 꼴입니다. AI가 정형화된 일들을 대체하면서 남겨지는 건 창의성과 감성 지능, 그리고 인간관계를 다루는 능력 세 가지 정도입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다움의 가치는 그래서 더 높아지게 됩니다. 마치 오아시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신기루일 수 있는 이 기계적 관계들은 우리에게 진정한 관계의 본질이 무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합니다.
AI 시대에 사람 간의 ‘관계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은 ‘더 깊은 관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연결의 과잉이 만드는 문제들이 더 의미 있는 연결을 통해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엔 대략 세 가지 해법이 떠올려집니다. 우선, 진정한 연결을 위해 잠시 SNS를 끄는 ‘비연결’ 휴식의 시간을 갖는 겁니다. 마치 식물이 더 깊이 뿌리내리기 위해 고요의 시간이 필요하고, 대지가 겨울의 휴식을 통해 가을의 풍요로움을 준비하듯이 인간관계도 의미 있는 침묵과 단절의 시간이 있어야 깊어집니다. 우리는 이렇게 휴식의 시간을 통해 더 풍요로운 관계를 위한 마음의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는 디지털 자극에서 잠깐 벗어나 성찰의 시간이 있어야 자신과 타인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AI가 대체할 수 없는 관계의 깊이를 추구하는 방법입니다. 표면적 연결이 아닌 취약함을 공유하고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누는 관계로의 전환입니다. 카페라떼의 진정한 맛이 표면의 거품이 아닌 에스프레소와 우유의 깊은 조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인간관계의 풍요로움은 표면적 대화보다 눈빛을 마주하고 나누는 교감에서 비롯됩니다. 이건 완벽한 거울처럼 반응하면서도 함께 성장하지는 못하는 AI와는 다른 관계입니다. 진정한 관계란 함께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셋째, AI 시대에는 관계의 의미 자체를 재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AI와 관계의 부정이 아니라 그걸 인간관계를 보완하는 도구로 인식하는 겁니다. 마치 지도와 실제 여행지를 혼동하지 않는 것처럼, AI가 인간관계의 특정 기능은 보완하지만, 그 본질적 가치를 대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기계와의 관계는 마치 강을 건너기 위한 다리와 같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우리는 그 위에서 살지는 않는 것과 같습니다. 더 깊이 있는 인간관계로 가는 통로인 셈입니다.
재학생 여러분,
스마트폰과 AI 알고리즘이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온 가족이 함께 보던 TV를 개인형으로 쪼개놓았고, 틱톡은 우리의 주의력을 몇 초 단위로 분산시킵니다. 우리 선택의 폭은 넓어졌지만, 정작 그 관계는 점점 얕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통계청의 2023년 사회조사에선 주변에 어려움을 의논할 사람이 없다고 답한 사람이 21.8%나 됩니다. 이런 현상은 20·30대에서 더 두드러집니다. 여러분이 역량을 쌓는 공부는 그래서 강의실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결국 내 곁에 남는 건 사람입니다. AI 시대에 가장 오래 가는 강력한 힘은 결국 ‘사람과의 관계’에 있다는 얘기입니다. 다가오는 세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술 가운데 하나는 깊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임을 알아야 합니다. 연결이 쉬워질수록 관계는 어려워지고, AI가 발전할수록 인간다움은 더 귀해지며 우리가 외로움을 느낄수록 관계의 가치는 더 선명해진다는 관계의 역설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에 대해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 명쾌한 해답이 있습니다. 1936년 <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후 세계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의 인생을 바꾼 책으로 알려질 정도로 지금도 자기계발서의 바이블로 꼽히는 명저입니다. 바깥세상을 준비하는 대학생에겐 꼭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누구에게나 친구는 의무가 아닌 선택이고, 내가 선택한 유일한 가족입니다. 대학 시절의 학생자치단체나 동아리 활동에서 맺어지는 친구와의 관계는 타인과의 소통 능력을 쌓고 실험하는 값진 무대입니다. AI 시대를 항해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깊이 있는 공감이고, 더 빠른 연결보다 의미 있는 관계입니다. 더 완벽한 답이 아니라 함께 찾아가는 질문의 여정입니다. 이것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지혜이며 치유의 메시지입니다. 오늘 밤, 잠들기 전에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생각나는 친구들을 떠올려 봅시다.